1. 얼핏 보기에 이은실의 작업은 전형적인 동양화(한국화)처럼 보인다. 활용하는 붓과 재료, 기법(수묵채색)을 봐도 그렇고 바탕 면(장지)을 봐서도 그렇다. 화면 또한 얼핏 통상적인 한국화 작법을 벗어나 있지 않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곳에는 흔히 한국화에서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과 내용이 숨겨져 있다. 노골적으로 드러낸 성기 혹은 성적 교접의 정황과 더불어 제시되는 발칙한 장면들, 일상 삶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미묘한 권력관계나 억압 메커니즘에 대한 암시, 인간의 욕망과 에너지, 혼돈, 자기파괴, 맹목성 같은 극단적 상황과 정서의 적나라한 표출 등이 그것이다. 이은실은 주류 한국화의 미적 이념(무위자연 등)과는 화합 불가능한 그야말로 그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어 왔던 감성, 사건, 서사들을 화면 안에 도입한다. 
 
2. 초기작 ‘Attitude’(2004)는 그녀의 작업을 관통하는 모티브를 짐작케 하여 흥미롭다. 두 개의 분리된 작업을 묶어 하나의 작품으로 제시한 이 작품은 각각 성교 이후 취하고 있는 남녀의 자세(혹은 태도)를 전형화하고 있다. 남성은 자신의 성기를 감추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면서 쾌락 이후의 휴식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자세다. 반면 여성은 자신의 성기를 감춘 채 자신이 겪은 쾌락의 경험을 부끄러워하는 듯 뒤돌아 있다. 덧붙여 남성의 성기는 아직 응결된 피로 인해 발기되어 있는(승리, 성취) 반면 여성의 화면에는 처녀성의 상징인 붉은 피가 터져 바닥에 흘러나온 채로 있다(상실, 흠결).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남녀 사이의 사랑과 쾌락의 행위에까지 스며들어 있는 권력 관계이며, 그 관계를 유지시키고 있는 문화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전형화 방식을 취하고 있는 이 그림은 가장 순수(?)하고 자유로워야 할 사랑의 행위마저도 가부장제 문화에 의해 철저히 착색되어 있음을 섬세하고 명확한 통찰력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3. ‘망望’(2005)은 작가의 초기작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화면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한쪽은 숲의 풍경이며, 다른 한쪽은 그 숲과 차단되어 그 숲의 풍경을 바라보도록 배치된 건물 안 공간이다. 이 공간은 한옥의 방안임을 짐작케 한다. 풍경은 산도 보이고 멀리 폭포도 있으며 나무들이 우거진 산의 숲 속 언덕이다. 나무를 그린 필치나 형태, 바위의 모습, 배치 등은 어딘가 음습陰濕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풍경의 주인공은 호랑이와 사슴이다(작가는 인간의 동물성을 염두에 둔 듯 작품에서 동물을 은유 대상으로 자주 활용한다). 호랑이는 사슴을 겁간하고 난 듯 성기에 피가 묻어있고, 사슴은 아래쪽으로 분비물과 피가 흥건한 채 저 앞쪽의 호랑이를 바라본다. 방안의 우리(관객)은 그 광경을 일종의 관음의 시선으로 바라다본다. 이 그림은 교접 이후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적 애착의 정황을 복합적인 시선의 교차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겁간을 당한 이후 사슴(여)이 호랑이(남)를 바라는 이유는 무얼까? 호랑이가 사슴으로부터 얻어낸 쾌락은 어떤 성격의 것인가?       

4. ‘Take off’(2008)는 앞의 작품들과 약간은 궤를 달리한다. ‘take off’는 ‘벗다’라는 의미다. 작가에 따르면 그림 중앙의 형상은 스스로 껍질(피부)을 벗겨낸 사람 형상이라고 한다. 피부가 벗겨진 인간의 형상은 바람에 의해 마치 촛불처럼 흔들린다. 광풍이 몰아쳐 인물을 둘러싼 집의 구성물들은(지붕, 문, 기둥)은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 버리고 저 앞쪽으로 대문이 문이 열린 채 서있다. 화면은 수많은 먹점들로 조성되어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이며, 가장자리를 둘러싼 대나무 숲 안쪽으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 것은 정신적으로 극단적인 해체 상태에 처한 한 인물의 내면이며, 그 해체를 둘러싼 사회 문화적 맥락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 우리들…

5. ‘곤두선 사람’(2013)은 좀 예외적이다. 작가의 여타 작품들과는 달리 여기서는 어떤 서사도 구성해 낼 수 없다. 단지 제목이 암시하듯 (신경이) ‘곤두선 사람’의 피부를 그려낸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겠다. 그림은 탁월한 묘사력으로 정밀하고 명확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그저 피부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감각과 느낌으로 묘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6. ‘부합’(2013)은 작가가 즐겨 활용하는 모티브들 곧 공간-집과, 성기-리비도를 축으로 하여 구성한 작품이다. 화면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큐브 형태의 공간이다. 집 혹은 가정을 상징하는 듯한 이 큐브공간에는 4면 벽이 있고 천장과 바닥이 있다. 안 쪽 벽에는 멀리 산들이 그려져 있고 문이 보인다. 큐브의 바닥과 천장 위치에는 각각 여성의 성기와 남성의 성기가 그려져 있는데, 남성 성기가 위축되어 있다면 여성의 그것은 발기되어 있다. 위쪽 평면과 달리 아래쪽 평면은 바닥에 부착되지 않고 떠있을 뿐 아니라 큐브 공간 바깥으로 이곳저곳이 돌출해 있어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인간 개개인의 리비도 배출과 조절방식은 당자의 행동양식과 성격 등을 형성하는 기본 요인이다. 작품에서 성적 층위의 어긋남은 공간 구성의 어긋남으로 전이되며, 그리하여 공간 전반은 부합符合치 못하는 장소로 된다. 작가의 목표는 그 어긋난 상황을 추상하여 가시화하려는 데 있는 듯하다.    

7. 마지막 작품은 가장 최근 발표된 ‘삶의 풍경’(2018)이다. 이 작품은 세로 180cm 가로 488cm에 이르는 대작으로, 좌측에는 여러 마리의 호랑이들이 등을 내보인 채 얽혀 있으며, 우측에는 발기된 남성 성기를 연상시키는 붉은 바위산이 배치되어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동물적 욕망으로 뒤얽힌 세상, 오로지 리비도 충족이라는 목표를 위해 추동되는 삶의 정황을 연상시킨다. 세밀한 묘사와 채색으로 실감나게 표현된 호랑이들의 몸체, 그 움직임이 드러내는 번뜩임과 꿈틀거림 그리고 이 움직임과 붉은 바위산들의 충혈 사이의 연관에 대한 암시 구성이 그림의 설득력의 요체다. 하지만 이 그림은 미묘하다. 어찌 보면 감각이 우세하지만, 달리 보면 해석이 강력하고 그래선지 많은 질문들이 던져지는가 하면 사라진다.  

8. 작품들을 통해 보았듯이 이은실은 자신이 예리한 시선으로 감득하고 파악한 삶의 정황들을 거리낌 없이 화면으로 옮겨 놓는다. 그녀는 이 작업을 전통 한국화의 기법, 재료, 매체를 활용하여 제작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 전통의 이미지 유형이나 어법들 또한 적절히 전용하여 이뤄낸다. 하지만 그녀는 이 전통의 제작과정을 규제해 온 그 어떤 이념적 전제들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며, 전통의 활용을 철저하게 자신이 전달하려는 감성의 내실을 표현하려는 목적에 종속시킨다. 마치 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 같이, 그녀는 지금 이곳의 생생한 감성적 현실을 전달하기 위해 모든 기존의 기법, 매체, 재료, 어법들을 전복적으로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가 스스로 경험하고 파악한 현실에 매우 솔직하고 충실하다는 점 아닐까 싶다. 그녀의 작업에서 관습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는 까닭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녀의 작업은 이렇게 포착된 모티브를 표현하기 위해 다각도의 모색을 진행한 결과인데, 따라서 그 때마다 관행을 벗어나 독자적이다. 그녀의 붓과 물감을 다루는 능숙함 역시 이러한 성취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최근작들이, 초기작들이 상대적으로 자신이 확인한 바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과 달리, 만만치 않은 혼란을 겪고 있다고 느낀다. 무엇보다도 다루려는 모티브 자체가 추상화 되어 있고 초점이 분산되어 있으며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현실의 복합성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되고 감지하기 어려워진 때문은 아닐까?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필자로서는 그녀가 옹골찬 작가적 자세로 또 다른 가경佳境을 드러낼 시점을 기다려 볼 뿐이다.
 
이영욱, 미술평론가